픽미 픽미 픽미업(Pick Me Up!)

May 2, 2016

90년대 초 즐겨보던 방송이 있다. 투니버스와 MTV, KMTV이다. 인터넷도 발달하지 못했고 방송채널도 다양하지 않았고 24시간 종일 방송도 없던 때다. 나는 문맹을 벗어나자마자 꼬맹이 때부터 쥐방울 드나들 듯 동네 만화방을 다녔다. 음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방마다 미니 오디오 시스템을 넣어주셨기 때문에 음악과 더불어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프린스의 사망소식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대표곡 ‘When Doves Cry’, ‘Purple Rain’ 등을 찾아 듣는다. 가요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 자락도 좋아하고, 턴테이블에서 돌아가는 하드락 그룹의 연주도 좋아하고, 클래식 공연도 가끔 찾는, 음악에 한한 대식가이자 좋은 소비자인 나에게 음악 전문 방송 채널의 등장은 여가시간을 즐겁게 해주었다. 모든 음악이 삶의 영감이었고 만화책 속은 무한한 상상의 세계였던 나에게 종일 음악만 보여주는 채널의 등장과 만화 전문 채널은 그야말로 취향저격이었다. 한 세대를 지나 우리 집에 있는 청소년은 핸드폰으로 유투브를 즐겨본다. 그만 보라고 잔소리를 하려다 어릴 때 만화 삼매경에 빠져있던 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웃어버린다. 만화책에서 투니버스로, 오디오에서 비디오로, 유선에서 무선으로, 거기다 VR까지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얼마 전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프로듀서 101’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멈추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기에 잠시 파악해보니 참으로 개인적인 취향과 생각이건데, 이런 프로그램은…. 회의시간에 ‘새 프로가 있던데 이런 프로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조만간 걸그룹 101을 보게 될 것이다. 오디션 문화가 자연스러워진 요즘 이 프로그램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평가 절차를 거쳐 상품성이 뛰어난 11명을 발굴했다. 101명을 단련시키는 댄스, 노래 등 트레이너들도 등장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희도 댄스 트레이너로 출연했다. 트레이너들이 상품성을 높여주는 기술자였고 정신적인 스승이 되어주었다. 90년대 초 뮤직 방송채널과 더불어 새롭게 등장한 전문직으로 VJ가 있었다면 지금은 스타 제조에 스타 이상의 스타성을 지닌 트레이너들의 활약이 있다. 매 회 마다 국민 프로듀서의 투표로 성적이 매겨지고 1위부터 꼴찌까지 발표되고 탈락순위 바로 앞 선수의 발표는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매 회 마다 소녀들은 고된 연습을, 더불어 함께 수련하고 경쟁하는 고통을, 선정 및 탈락의 순간은 울음바다 등 같은 레퍼토리에 담겨진다. 밝고 긍정적이며 타인을 배려하는 평소 모습이 카메라에 비춰진 한 소녀는 알고 보니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역경을 이겨내며 아름답게 성장했나보다. 1위에 오르자 울먹이며 고생한 엄마에게 꽃길을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어려운 분들도 자신을 보면서 힘을 내시라고 격려하는 성숙함도 보인다. 짠한 감동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좋아했고, 아마도 높은 시청률을 올렸을 것이고, 각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픽미업’이라는 코믹 대사로 끼어들어갔으며 메인타이틀 곡은 총선에서 어느 당의 홍보 노래로 쓰여 길거리에서는 ‘픽미 픽미 픽미업’이 흘러나왔다. 101명 소녀들이 어여쁜 자태로 이 노래를 부르며 ‘저를 뽑아주세요’라고 호소하고 11명이 발탁된 후 총선 후보들도 이 노래를 부르며 ‘저희를 뽑아주신다면~’하고 로고송 선거전을 펼쳐 누군가들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 노래를 듣는 누군가는 프로듀서가 되는 착각이, 선거권자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그리고 나에게 무언가 갈구하는 그들에 대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약간의 쾌감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중독성 있는 이 노래가 풍기는 뉘앙스 속에서 통속적이지만, 소비자를 존중하고 ‘너의 손으로 만드는’이라는 참여의 각본으로 소비성을 높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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